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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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제작년 겨울이였을거야. 하필 그날 경미랑 쇼핑센터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였잖아? 약속장소 가려고 택시타고 가는 길에 잠깐 사고가 난거야. 뭐 물론 내 차는 아니고 앞앞차? 아무튼 앞차의 더 앞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모락모락 나면서 불쾌하고 역겨운 냄새가 택시 안으로 가득 번지고 있는거야.

시간은 늦을거 같고 괜히 앞에 어떤 상황인가 궁금하잖아.

일단 기사분한테 내리겠다고 했지. 사실 뭐 걸어다고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였고 차라리 걸어가는게 더 나을수도 있겠다 싶었거든.

날씨 추운거야 겨울인데 그러려니 한거고 해서 코트를 주섬주섬 챙기고 가방을 가지고 내렸지. 생각보다 큰 사고인지 사람들이 그쪽으로 가득 몰리더라고. 어떤 사람은 보는것 만으로도 괴로운지 인상을 굉장히 찡그리고 있고 어떤 여자는 어떻게 해!를 연발하고 있길래 봤는데 왠걸.

정말 차 두개가 거의 뒤엉켜있다시피 찌그러져있고 사실 맨 앞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박살이 나있는거야. 트럭 하나가 반쯤 반파되서 앞쪽 차에 무슨 본드로 붙여놓은듯 완전 딱! 거기서 기름하고 피가 같이 뚝뚝뚝 떨어지는게 보이는데 정말 순간 너무 역겨웠거든.

나도 모르겠어. 무슨 생각이였는지.

원래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텐데. 그래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경미를 만나 쇼핑도 하고 맛있는거 사먹고 수다 실컷 떨다가 집에 왔을텐데.

그리고는 엄마한테 경미 오랜만에 만났다고 자랑질도 좀 하면서 그렇게 보냈을텐데. 너무 궁금한거야, 갑자기.

그래서 앞을 가리고 있는 경찰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밀어서 좀더 자세히 보려고 기를 썻거든. 하필 내쪽에 경찰이 나를 크게 막지 않아서 그때 난 다 봤어. 한 남자의 일그러져 차체 밖으로 삐져나온 손과 다리를.

좀 끔찍하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가 본 건 익숙한 양말과 신발 그리고 나와 똑같은 약혼반지였어. 설마 설마 라고 생각했던 순간 찌그러진 차를 보니 그이의 차였어.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어. 무중력공간이 갑자기 내 앞에서 펼쳐진 것처럼 숨도 안쉬어지고 그냥 아무 말도 안나오는거야.

나는 있잖아 수진아. 나는 내가 그런 일을 겪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 앞에 사지가 절단되 덜렁거리는 사람이 바로 어제까지 나에게 결혼하자고 프로포즈를 하고 꽃다발을 주고 나를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그 사람이라는게 너무 믿어지지 않는거야.

아니 사실 안믿었어. 그냥 비슷한 사람인가보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너무 웃긴거야. 그 옆에 니가 있더라 수진아.

니가 말야.

들것에 실려가는 피투성이가 된 니가 보이는거야. 그것도 사지가 너덜너덜한 그 사람의 엽좌석에서 마치 정말 소중히 보호받은것처럼… 니가 추욱 처진채로 나오더라.

그때 내가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

아니라고, 무언가 잘못된 것일거라고생각했어야 했을까 수진아?

그래 나도 처음엔 그냥 뭔가 잘못된거 같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어쨋던 내가 아는 사람이고 너는 뭔가 살아있는거 같아서 내 앞의 아무 경찰이나 붙잡고 소리 질렀어.

“내가 아는 사람이예요! 내 친구예요!”

나는 왜 그랬을까..

너덜너덜한채 차에 매달려있던 내 남자가 아닌 왜 너를 찾았을까 수진아.

지금 보니까 그게 맞았던거야. 이렇게 의식없이 누워있는 너를 보려고. 그리고 너한테 지금부터 내가 니 인생을 어떻게 해줄지 천천히 이야기 해주려고 그러려고 난 너를 찾은거야 수진아.

그러니까.. 수진아.

깨지말아야 해. 그래야 돼. 안그러면 나는 너를 다시 죽일지도 몰라. 수진아.

지금도 니가 이 이야기를 다 듣고있을거라고 생각해. 그렇지? 그러니까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 너와 니 주변을 그리고 너를 아는 너를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망가뜨려줄께. 수진아.

그리고 눈 떳을때 그냥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는게 더 나았을거 같다고. 그렇게 느낄수 있게 해줄께.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자야해. 조금만 더.

아직은 말이야.

그럴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