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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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져.”

미친듯이 좋은 날씨였다. 공기는 정말 좋았고 미세먼지도 없고 햇빛은 머리위에서 땅바닥까지 직진으로 내리꽃아지는 비현실적으로 좋은 날씨였다.

“그게 무슨 말이야!?”

석현은 늘 투덕거리며 싸우던 평소의 희진의 말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꼇다. 이번엔 진짜다.

“도저히 못해먹겠어. 너랑 연애하는거.”

“뭐가 안맞는데? 다른 부분은 서로 풀어가기로 했잖아.”

“너와 다는 다른게 아니야.”

“그러면?”

“그냥 애초부터 너하고 만난거 자체가 틀려먹었어.”

“뭐? 그런게 어디있어! 2년을 만났으면서 다른거하고 틀린거 구분도 못하냐?”

“그 와중에 또 니 생각에 맞춰서 지적질 중이지?”

“야. 강희진! 그게 아니잖아!”

“아. 됐어. 이제 더 이상은 지쳐서 힘들어.”

희진은 옆자리 가방을 낚아채며 일어났다.

누가봐도 경멸감이 잔뜩 묻어있는 표정으로 희진은 앉아있는 석현을 내려다봤다.

“그냥 너랑 같은 사람 만나. 나는 너랑은 틀렸어. 이제 더이상의 어떤 연민도 없어. 처음엔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너와 나는 다른거라고. 그러니까 다름을 인정하면 그래서 서로를 인정하면 될거라고. 그런데 만날수록 아니더라. 이 세상엔 그냥 만나면 안되는 오답같은 사이도 있더라. 그거 너와 나더라. 그러니 나는 이 오답같은 만남을 정리해야겠어.”

석현은 분노가 차올랐다. 가려던 희진의 손목을 잡아 억지로 다시 앉히며 어금니를 깨문채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그냥 보내면 정말 끝이라는 생각에 그는 그녀를 제대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나랑 만났던 모든 시간이 다 틀리다는거야?”

“어. 모두 다 틀려먹었어.”

“너 정말 못되처먹었구나?”

“내가? 하. 그래. 니 기준에서 나는 천하의 썅년이 되겠지. 마음대로 해. 니가 언제 나를 이해해준 적이 있기나 하니?”

“난 정말 모르겠다고. 왜 갑자기..”

“갑자기 아니야. 나는 너한테 계속 말했어. 표현하고 같이 풀어나가보자고 노력했어. 근데 너는 아니더라. 그것도 못알아먹는 거 자체가 틀렸어.”

희진은 손목을 비틀어 석현의 손에서 벗어났다.

하얀 색으로 변했던 그녀의 손목이 다시 붉어지는 사이 그녀는 한숨을 쉬며 창문으로 눈을 돌렸다.

“희진아. 다시한번 생각해봐. 나는 우리가 정말 잘 맞았다고 생각해. 그동안 내가 잘못한게 있다면 우리 대화로…”

“내가 맞춘거야. 너를 맞춰준거라고. 그 사이 점점히 내가 너한테 말 안한거 같아? 모든 상황이 다 니 중심이였어. 나는 당신의 곁다리 주변인물 같았고.”

“아니 사랑하는 사이에 주변인물이 어디있어. 나는 니가 내 세상의 중심이였다고.”

“그래. 니 세상에선 그랬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석현아. 지금 대화에서조차 너는 니 중심을 말하고 있거든. 난 이제 정말 그런 니 모습에 질렸어. 잡지마. 한번만 더 잡으면 진짜 소리지를거야. 잘지내.”

희진은 다시한번 가방을 낚아채고 일어났다. 이번엔 석현을 조지 않았다. 조금 먼 거리의 까페출구로 푸다닥 걸어나가는 모습에 석현은 황망하게 바라볼 뿐이였다.

자신이 오늘 희진에게 무엇을 잘못한건지 모르겠어서 석현은 대화직전까지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늘 보던대로 봤고 늘 만나던 곳에서 만났다.

자신이 알아본 곳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고 그녀의 재잘거림이 기분좋게 들리진 않았지만 음식이 놀랍도록 취향에 맞고 맛있어서 그런 곳을 고른 자기스스로가 기특하다고 생각하니 별다르게 거슬리지도 않았다.

까페를 오던길에 희진이 들리자던 옷가게에서도 그녀는 별다른 이상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옷 몇개를 들며 석현에게 의견을 물어봤고 약간 통통한듯한 그녀 몸에 딱히 사이즈가 맞을것 같지않아 석현은 늘 그렇듯 매너있게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며 애둘러 표현해줬다. 오늘따라 나는 왜이렇게 매너있고 깔끔한 모드인가 라며 다시한번 스스로를 기특하게 생각했던 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본인이 무엇을 잘못한건지 알수가 없던 석현은 앉은 자리에서 마른 세수로 상황을 마무리졌다.

그래. 이건 그녀의 실수다.

그냥 그녀가 오늘 뭔가 기분이 안좋았던거다.

곧 그녀는 돌아올거야.

시켜놓은 아메리카노를 벌컥거리며 원샷 후 석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이… 아깝게 차라도 다 마시고 가지.

희진이 사켜놓은 라떼를 보며 석현은 입맛을 다졌지만 주변의 보는 눈이 신경쓰여 그냥 가기로 했다.

날씨가 미치도록 좋은 날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