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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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다고 생각되었을때 쯤이였다.

처마 밑 작은 턱에 앉아 며칠째 하늘이 찢어진듯 내리는 비를 보며 눅눅해있는 공기에서 신선한 공기가 그리운듯 거한 하품을 하며 산소를 갈구했다.

하늘은 어둡고 칙칙하기만 해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매일이 지속되고 있었다.

갑자기 달고 시원한 수박 생각이 났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경험을 통해 알겠지만 이 시기의 수박은 맹맹하고 맛이 없다.

물이 한껏들어 빵빵할지는 몰라도 이맛 저맛도 아닌 그저 비싼 물맛 과일이 되버릴 뿐이다.

모든게 맹숭맹숭하고 지루한게 꼭 닮았다고 생각할때 즈음 베란다 창문을 닫고 자리를 옮겨 쇼파에 몸을 털석 패대기친다.

비가 오니 선선하다고 생각해 에어컨을 켜지않은것이 가장 패착이였다. 쇼파에 몸을 패대기 친 순간 느껴진 그 끔찍한 끈적거림에 몸서리가 쳐졌다.

이제 지루한데 비루하기까지 하다. 에어컨 리모컨이 어디있더라. 빨리 이 지긋지긋한 습기감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에어컨이 습기를 걷어가기 전까지 느낄 고통의 시간을 잠시라도 잊고싶어 에어컨 버튼을 누르자마자 티비를 켰다.

홈쇼핑에선 벌써부터 한달이나 남은 추석때 사용될 벌초기계를 판매하고 있었다. 여성호스트가 자기가 들어도 될만큼 너무 가볍다며 솔 음정의 소리로 유난스럽게 재잘거리는 것이 거슬려 채널을 옮겼다.

이것저것 틀어도 딱히 재미있는건 보이지 않는다. 티비조차 지루하다니..

이게 다 저 지긋지긋한 장마때문이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아니다.

실은 장마는 핑계다.

맹숭맹숭하고 지루하고 비루하게 시간을 장마비 흘러내리듯 그렇게 마구마구 흘려보내는 나때문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다시 지루하게 이어진다.

지루한 장마때문이다.